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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라도

지리산 종주 Jirisan (Mt.Jiri)


'언젠가는 꼭 지리산에 갈테야'
라는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지는데에 나의 의지는 그렇게 크게 많이 작용하지 않았다.
우연히 식사 자리에서 산 얘기가 나오면서 다들 한마디씩 '아..언젠간 지리산을 꼭 가보고 싶어요' 라고 몇 사람이 말하자 "그럼 갑시다" 했을때 난 고개 숙이고 밥만 먹고 있었다. 괜히 말 잘못 꺼냈다간 꼼짝 없이 가야 할 거 같은데 엄두가 안났다.
정말 '엄두가 안난다' 라는 말이 딱 맞다. 생각만 해도 아찔.
3일간 이 무더운데 씻지도 못하고 머리도 못감고 치약도 가져갈 수 없다는 말에 더더욱 의기소침해져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영부영 합류하게 되어 꼼짝 없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이왕 가는것 재밌게 가보자...라고 했지만 겁이...땀은 삐질



우린 이 산행을 위해 회의를 3차례 걸쳐서 했고, 준비물을 챙기고 또 챙겼다.
누군가는 태백산맥을 다시 읽고 가겠다고 했다.
백두산 다음으로 지리산은 대한민국의 큰 정기를 품고 있는 산이기에 누구나 꼭 한번쯤은 가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정:

성삼재 -  노고단 고개(아침) - 임걸령 삼거리 - 노루목 - 화개재 - 연하천(점심) - 벽소령(저녁 및 취침) - 세석(점심) - 장터목 (저녁 및 취침)


구례역 새벽  4시 도착
퇴근하자 마자 여의도에서 사우나를 하고 (3일간 씻을 수 없기에 마지막으로) 용산역으로 가서 못다 본 장을 본다.
11시에 떠나는 호남선에는 거의 90프로가 지리산에 가는 사람들인거 같다.


구례역 도착하여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5명이서 4만원에 택시를 잡아서 가기로 했다.
아저씨 말이 무거운 가방 메고 저 버스를 타면 시루떡이 되어 가기도 전에 지친다는.
세 사람이상이라면 무조건 택시 타는게 나은 거 같다.
거리상도 꽤 가기 때문에..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가는 동안 유일하게 비가 왔으나 우비를 입기엔 귀찮아서 다들 비를 맞으면서 올라갔다.
결국 이번 산행에서 우비 쓸일은 없었다. 다행히도...


노고단에 도착해서 비를 맞아가며 한쪽 구석에서 먹은 라면은 가히 일품 (여기까진 그랬다)


하지만 이때 부터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꺼내 놓는 반찬들은 그냥 우리 처럼 꼬마김치가 아니라 다들 반찬통에 이것저것 싸오고 무엇보다도 '고기'를 싸왔다. 꿀꺽





노루목 근처...구름이 예술이었는데 나의 똑딱이가 표현을 할 수가 없다.  ㅠㅠ


이것에 짐을 이고 올라와 이 화개재를 넘어 화개 장터로 간다고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화개장터.

사실 지리산 자체가 전라도에서 올라가 경상도로 내려오는...사투리가 완전히 바뀌어 있는 재미 있는 곳이니까.
뭐 스페인에서 올라가서 내려올때는 이태리로 내려오는 것 까지는 아니여도 산에서 만난 진한 사투리들은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지리산이 재밌는 이유는 올라갔다 내려왔다. 봉우리를 몇개씩 넘어가는 것. 한번의 종주로 몇개의 산을 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나 같은 저질 체력도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반복하는게 주구장창 올라가는 것보단 낫다.








<벽소령 산장>
드디어 첫날 묵을 벽소령 산장 도착.
연하천까지의 계산을 잘못하여 점심을 3시가 넘어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쨋든 그 중간 휴게소가 뱀사골 대피소였는데 사람들이 하도 씻어되어 폐쇄를 했댄다. 그건 그렇지만 물도 없이 반나절 이상을 걸으려니 죽겠다.
그 사이 당연히 사진도 없다.

제발 물좀 줘...

쉬려고 멈춰선 길에 한 아이가 아버지한테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나 들으라고 한 거 같기도 하다.
"아...누가 나 물 한모금만 줬으면"

사실은 그 아이의 가방에 끼어 있는 커다란 물통이 계속 내 눈길을 끌었다.
"얘야...나 물한모금만 다오" 이 말을 꺼내기 바로 직전 그 아이가 선수를 친것이다.
그래서 다행히 난 쪽팔림은 면했다. 서로 누가 먼저 얘기를 꺼내느냐 속으로 실랑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내 승리!

딱 탈수증 걸려서 쓰러질 거 같다. 입은 바짝바짝 마르다.
아무나 붙들고 물달라고 소리 치고 싶다.

 

어쨋든 초죽음이 되어 도착한 벽소령 산장은 이미 고기 판이 벌어졌다.

아....이 얼마나 고기를 안 싸온게 후회스럽는가!!!
내게 자유 대신 고기를 다오~



아침인데 사람들은 또 어제 먹다 남긴 고기를 굽는다. 쩝....쩝....
내려가면 삼겹살 일주일 내내 먹으리라.

난 그 전날 6시에 밥을 먹고 7시에 들어가 눕자 마자 바로 곯아 떨어져서 내 옆에 코를 고는 여자 때문에 잠을 못잤다는 내 반대편 동료는 나보고 어쩜 그렇게 시끄러운데 새근새근 잠을 잘자냔다. 그게 바로 내 비장의 무기가 아니겠소.

다른건 몰라도 내 수면은 여행에 100% 적합용이다. 어디서든 잘 자는.너무 잘자서 위험한...

11시간 자고 일어나면 몸이 나을줄 알았는데....
다리를 안 풀고 잤더니 천근만근 어제보다 상태 안 좋다.


11시간 푹 자고 일어났어요~

얼굴은 웃고있지만 고기냄새때문에 괴롭답니다.


 이번엔 전투식량.
저 전투식량 고기볶음밥, 야채 볶음밥...다신 쳐다도 보기 싫다. 저걸 먹느니...라면 한끼 더 먹겠다.




손에 쥐고 있는 소고기 비빕밥....정말 비추다.
저거 먹고 훈련하는 대한민국 군인들 힘내이소.



저 멀리 보이는 세석.  일단 저기까지 가야한다.

다음날 나의 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한발한발 힘겹게 내딛으면서 내 옷만 든 배낭은 다른 남자 동료에게 건네졌다.
이런 민폐가....




바로 이 친구가 내 짐까지 메고 가는 중이다. 중간중간 내가 매기도 했다.
저 맨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천왕봉.







장터목 산장
바람이 워낙 쌔서 처음엔 "와~ 시원해" 했다가 낭패 보는 곳.



그 바람 세찬 곳에서 참치라면도 먹고 스팸도 먹고.(이 얼마만에 먹어보는...)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냈다.
장터목은 특히나 예약이 치열해서 비박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고 복도에서 자는 사람도 많다.
3시에 씻으려고 나오니 사람들은 꼬박 밤을 새우며 얘기를 나눈거 같다. 여기저기 사람들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저 멀리 진주 시내 불빛이 보인다.

새벽 4시. 우리는 하산길에 올랐다.
깜깜한 돌바위를 내려오는 길은 절대 절대 만만치 않다. 특히나 이 길일까 저길일까 몇번 고민 했는데 다행히 선두에서 잘 잡아줘서 헤매진 않았다. 아마 나 혼자 왔으면 패닉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스틱을 들고 다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길 안내를 해주는 편인데 돌바위는 그걸 볼 수 없으니...또 워낙 어둡기도 했고.

곰 출현지역이라는 사인도 대낮에 보는 것과는 다른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3시간쯤 내려오자 동이 텄다. 남들은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오르막에 익숙해진 근육이 내리막에 적응 못하고 다리 풀려 헤맬때 난 왠일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뛰어 내려오다 시피 했다. 그 전날 폐렴환자 모냥 숨 몰아쉬는 것도 없이...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 "내리막의 여왕"



계속 소리를 들으며 내려왔는데 해가 떠보니 이쪽 코스엔 계곡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
하면 안되지만 누구는 목욕도 했다.









드뎌 평지 ..

물론 여기서 부터도 거의 30분 더 내려가야했지만 이 얼마만에 밟아 보는 평지인가....

지리산 야영지 이름을 많이 들어봤는데 이곳에 있었다. 그리 크지 않으나 깨끗하고 잘 정리 되고 잔디 밭도 또 나무 탁자와 의자들도 이쁘게.. 몇몇 텐트들이 보였고 텐트를 싣고 온 큰 차들이 보였다.

언젠간 꼭 나도 애들 데리고 이런 야영을 해보리라!!

진주는 너무 아름다운 도시였다.
조용하고...
법정 스님의 생가에 지어진 멋진 절도 있고. 곶감도 유명하단다. 정확히는 진주가 아니라 산청.
'산청 곶감'

택시 운전사 아저씨한테 명함도 받았다. 12월~2월에 최상급 감을 배송해주겠단다.
당도가 너무 높아 냉동실에 얼렸다가 몇달이 지나서라도 꺼내어 한입 배어 물면 바로 톡 터진다는.

2박 3일의 지리산 일정이 모두 끝났다.

내려올때까지만 해도 다신 안 올고 같은데 계절별로 다 보고 싶어졌다.

좀더 연습을 해서 적어도 내 짐을 먹을거 포함하여 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몸을 만든 후 다시 도전하리라...

그때까지

지리산..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