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야영장은 우리와 연이 없다
설악동 C 지구 야영장에 가기 전에.
우리는 춘천 중도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주말에는 예약 하기 힘들어서 평일 휴가에나 가능하겠다 해서 하루를 예약한 것인데..
결론부터 얘기 하자면, 우리는 중도와 인연이 없다.
춘천 시내에서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는 중도로 들어가는 선착장을 찾아 가는데 차가 함께 들어갈때 가는 선착장과 사람 몸만 들어갈 때 들어가는 선착장은 다른 곳에 위치한다. 중도 야영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패킹이 아닌 넓게 쓰려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차와 함께 들어가는 선착장으로 가야 한다.
저기 멀리 보이는 곳이 중도
저 배에 차가 실린다는 것도 신기하다.
그리고 과연 저 배일지도 확실치 않다.
다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저 배가 있었고, 선장에게 전화를 하면 데리러 온다는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없어 정말 이곳이 맞는지 확인까지 했다.
'근화동 선착장' 맞단다.
결국 약간의 망설임 이후 우리는 결심했다.
'중도 말고 다른 곳으로 가자'
배 도선료도 2만원씩 하고 비싸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느라 그만큼 기름값이 더 들긴 했지만, 갑자기 들어가기 싫어져 우리는 설악동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가는 길에 나오는 팜파스 휴게소는 독특하고 재밌는 곳이다.
휴게소의 사람들은 손님이 오건 말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이 휴게소의 원칙이 되는 듯
무관심하다. 그 무관심속에 우리도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도 다니고 커피도 한잔 사서 마시고
그네도 타고 사진 찍으며 짧은 휴식을 취해본다.
심지어는 우리가 탁자 위에 커피를 올려 놓고 사진을 찍다가 돌아와 보니 커피가 사라져
"우리 커피 어디 갔지?" 하는데도 옆을 지나던 직원(으로 보이는)은 아무 말이 없고,
그 커피가 바닥에 떨어져 커피가 흘러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리가 당황을 해도 아무 말 없이 흘끗 쳐다 보고 지나간다.
그 아저씨는 어쩌면 이 휴게소와 아무 상관없이 어쩌다가 카운터 앞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계산도 해준 손님일지도 모르겠다.
남미의 대초원을 말하는 팜파스
과연 이름과 잘 맞나 하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남미의 대 초원위에 이렇게 이쁜 휴게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고,
무뚝뚝한 휴게소 사람들은 잘 어울릴 것 같다.
시간이 되었다면, 배가 고팠다면, 일하는 사람들이 친절했다면
이곳에 앉아 식사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네 타는 요령을 잊어버렸는지 잘 나가지 않는다.
몇번 시도하다가 쉽게 포기해 버린다.
나이가 들면 안되는 것을 쉽게 포기 해 버릴 줄도 아는 것이다.
실은 나의 늘어난 몸무게 탓일지도 모르겠다.
강원도에 들어서자 몇몇 계곡들이 보이는데 역시나 가뭄에 말라 있다.
보는 내내 마음에 걸린다.
드디어 설악산의 위용이 보이기 시작한다.
몇 해 전만 해도 미시령 고개를 넘어 설악산으로 들어갔는데 이제는 기나긴 터널을 건너기만 하면 바로 이런 풍광이 그대로 나와 버린다.
어쩐지 편리해진 만큼 미시령의 구불구불한 드라이브 길을 잃은 듯 하다.
저 웅대한 산을 마주하자니 드디어 강원도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CAMPING
설악동 야영장
드디어 설악동 야영장에 도착했다. 출발하여 춘천 들려 참 어렵게도 왔다.
야호! 역시나 사람이 없다. 이 넓디 넓은 야영장에 20동도 채 안되게 있다니, 역시 비수기 평일 캠핑이 최고다.
앞으로 성수기 주말에는 오지 아니면 절대 아무곳도 가지 않으리라...
두달만 참자!
넓다. 참으로 넓다. 그래서 대부분 리빙쉘로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은 사이트들이 많다.
우리집과 두팀의 외국인들만 거의 백팩 모드로 텐트 달랑 들고 온 듯 하다.
위의 리빙쉘들과
아래 외국인 커플의 소박한 텐트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사이트를 구축하면서 약간의 반가운 비가 흩날린다.
여느 때 같았으면 비 온다고 걱정했겠지만, 이렇게 반가운 비를 어찌 고작 내 텐트 치는데 방해 된다고 불평하리...
나는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
물론 텐트는 신랑이 치고 나는 나무 그늘에 있었지만...
거대한 리빙쉘들 사이에 작디 작은 우리 집 완성
콜럼비아 패밀리세일에서 건진 8만원짜리 800필 구스다운은 정말 득템이다.
가볍고 따뜻하여 봄여름가을 아웃도어라이프에 좋고
겨울에는 이 위에 간단히 점퍼 하나 입어도 완전히 따뜻해진다.
얼마전 몽벨에서 본 40만원짜리 1000필 구스다운이 눈에 아른거렸는데 이 아이를 데려 오고 나서 대만족.
어쨌든 침낭을 무릎덮개 삼아 독서 삼매경으로 들어간다.
내가 읽을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과 남편이 읽을 하루키의 1Q84 두권을 넣어갔는데 유럽산책을 읽다가 심심해져 하루키 책을 읽었다.
두번째 읽으니 더 재미있는 듯..
하루키 소설은 이런 곳에서 읽기에도 그닥 나쁜 선택은 아닌 거 같다.
결국 여행을 마칠 때까지 남편은 손도 안대고 나만 1Q84 상권을 읽다가 왔다.
금방 해가 떨어지고 우리의 배꼽시계도 자연스레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 치기 시작하는 순간.
맥주 한캔으로 남편과 나눠 마시고도 남기고
질러 육포와 점심에 먹다가 남겨서 들고 온 닭갈비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의 탁월한 선택.
밤에 비가 잠시 내린다.
저녁을 먹고 나서 캠핑장 산책에 나섰다.
캠핑장은 어두울 때의 느낌과 새벽의 느낌이 정말 다르다. 둘다 좋아한다.
저녁엔 두런두런 사람들의 저녁 먹는 소리와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에
새벽엔 유난히 크게 들리는 새 소리와 상큼한 향기
가장 좋아하는 두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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