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의 유럽여행을 읽고 나서 두번째로 집어 든 책은 바로 '영국산책'이다.
까칠한 글쟁이 빌 브라이슨 아저씨의 글은 꼭 욕쟁이 할머니 같다.
욕을 엄청 해 대는데 기분 나쁘지 않고, 애정이 뚝뚝 묻어 나는.
그래서 그 지역에 나오는 사람들이랄지라도 "왜 그렇게 썼나요? 명예훼손이에요!"이라고 항의 하지 못할거 같다.
미국인인 빌 브라이슨이 영국에 살면서 마지막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기전 영국을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영국인의 독특한 성격들이 묻어 나고, 애정어린 놀림들이 너무 귀여워서 계속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어떤 대목은 "맞아맞아" 하면서 신나게 웃게 되고, 나중에 영국인 친구한테 꼭 말해줘야지 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이런 욕쟁이 아저씨가 우리의 지역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그려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지역색이 워낙 특이해서 재미있게 나올 거 같다.
사실 빌 브라이슨 이전에 좋아하던 핀란드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이 나의 best 이긴 하다.
그의 지역색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을 읽고 있으면 너무 웃겨서 눈물이 흠칫 날 정도이니까.
이 책을 읽고 스코틀랜드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까칠쟁이 브라이슨 아저씨도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스코틀랜드.
생각이 나서 스코틀랜드 사진들 꺼내 보았다.
오랫동안 나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회조직을 두고 한 매우 유의미한 그 실험이 러시아인들이 아닌 영국인들의 손에 맡겨졌다면 훨씬 더 잘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혹독한 사회주의 체제를 성공적으로 주입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영국인들에게는 고스란히 제2의 천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처 부인이 증명해 보였듯이 독재정권도 용인하며 수술이나 생필품 배달이 몇 년이나 늦어져도 아무런 불평 없이 기다릴 사람들이다. 중얼중얼 권력에 대한 조롱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절대로 반항하는 법이 없는 재주도 갖고 있다. 부와 권력을 쥐었던 자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줄도 안다. 이들은 스물다섯 살만 넘으면 동독 사람들처럼 옷을 입는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를 시행하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란 뜻이다. --- 본문 중에서
버지니아 워터는 영국에서 가장 특이하고 별난 지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미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똑같이 섞여 지내기 때문이다. 상점 주인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 역시 존경스럽다. 그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오랫동안 나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회조직을 두고 한 매우 유의미한 그 실험이 러시아인들이 아닌 영국인들의 손에 맡겨졌다면 훨씬 더 잘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혹독한 사회주의 체제를 성공적으로 주입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영국인들에게는 고스란히 제2의 천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처 부인이 증명해 보였듯이 독재정권도 용인하며 수술이나 생필품 배달이 몇 년이나 늦어져도 아무런 불평 없이 기다릴 사람들이다. 중얼중얼 권력에 대한 조롱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절대로 반항하는 법이 없는 재주도 갖고 있다. 부와 권력을 쥐었던 자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줄도 안다. 이들은 스물다섯 살만 넘으면 동독 사람들처럼 옷을 입는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를 시행하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란 뜻이다. --- 본문 중에서
버지니아 워터는 영국에서 가장 특이하고 별난 지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미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똑같이 섞여 지내기 때문이다. 상점 주인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 역시 존경스럽다. 그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지냈다. 파자마를 입고 수세미 머리를 한 남자가 제과점 한쪽 구석에 서서 벽을 보고 큰소리로 열변을 토해내도, 눈동자를 굴리며 연신 미소를 짓는 사람이 술집 테이블에 앉아서 주문한 스프에 각설탕을 떨어뜨리고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건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영국인들의 태도에 당황하곤 했다. 그들의 낙관주의는 엄청나게 불안한 국면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달라질 거야.” “더 나쁠 수도 있었는데 이만한 게 다행이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싸니까 기분 좋잖아.” “이정도면 정말 괜찮은 거지.” 하지만 나도 점차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갔다. 황량한 해변을 산책 나갔던 어느 날 축축해진 옷을 입고 추운 카페에 앉아 있다가 밀크티 한 잔과 케이크가 나오자 ‘오, 최고야!’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나 역시 똑같아지고 있음을. 내 삶이 풍족하고 부유해졌다. --- 본문 중에서
포틀랜드 공작 5세인 스코트 벤팅크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의 영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년의 벤팅크는 역사에 기리 남을 위대한 은둔자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별 이상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 웅장한 집에서 아주 작은 공간을 마련해 머물면서 방문을 뚫어 메시지 상자를 달고 그 안에 쪽지로 글을 적어 하인에게 전하는 식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음식은 부엌에서 식당까지 조그만 철로를 만들고는 그 위로 운반했다. 어쩌다가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공작은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면 하인은 가구라도 되는 것처럼 모른 척 하고 그곳을 지나갔다. 이것은 모두 사전에 미리 준비된 훈련에서 나온 것이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은 하인은 공작의 개인 스케이트장에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야 했다. --- 본문 중에서
솔테어는 1851년에서 1876년 사이에 타이터스 솔트 경이 세운 공업단지다. 그는 19세기가 배출해낸 산업주의를 지향하는 자본가로서 절대금주주의자이고 독선적인데다 하나님을 숭배했다. 한마디로 그는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그가 지은 기숙사에서 살아야 했고 그가 다니는 교회에 예배를 드려야 했으며 그의 지시를 일언반구의 어김없이 따라야 했다. 마을에는 선술집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았고 지역의 공원에서도 고성방가, 흡연, 오락 등의 꼴사나운 행동을 철저히 금지했다. 사람들은 실든 좋든 간에 아주 맑은 정신을 유지한 채로 부지런하고 얌전하게 지내게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오래전부터 가지고 다니면서 한 번씩 꺼내보고 좋아하는 신문 스크랩이 하나 있다. 「웨스턴 데일리」의 일기예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날씨 전망, 건조하고 따뜻한 날씨입니다. 하지만 비가 조금 내려 기온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날씨를 완벽하게 표현한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웨스턴 데일리」에서는 이 기사를 매일 고대로 내보내도 틀리는 법이 거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신문사라면 정말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애버딘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히 거슬리는 것이 너무 없어서 문제였다. 나는 천천히 새로 들어선 쇼핑센터 주위를 따라 상당히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모두들 특색 하나 없이 금방 잊힐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애버딘이라기보다는 ?대 영국의 특성에 있었다. 영국의 도시는 한 벌의 트럼프카드 같다. 마구 뒤섞이다 끝없이 다시 나눠진다. 같은 카드인데 순서만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다른 나라에 있다가 애버딘에 처음으로 왔다면 매우 독특하고 생동감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날로 번영하며 깨끗한 도시라고. 서점과 극장, 대학 등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확신한다. 다만 다른 곳과 너무나 닮아 있을 뿐이다. 영국에 있는 도시니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본문 중에서
나무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돌집 하나가 있다. 나의 조국보다 훨씬 더 오래된 집이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작은 나라에는 이곳 못지않은 장소가 너무도 많다. 갑자기, 순식간에, 영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좋던 나쁘던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오래된 교회도, 시골길도, 지나친 낙관주의자들도, “정말 죄송한데요”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내가 모르고 팔꿈치로 툭 쳤는데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도, 병우유도, 토스트에 들어간 콩도, 6월에 건초를 만드는 일도, 바닷가 부두도, 왕립지도원에서 만든 지도도, 밀크티와 핫케이크도, 여름 소나기도, 안개 자욱한 겨울날도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모두 사랑했다.
발췌: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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