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꿈에 그리던 바로 그곳
'굴업도'에 가다
인천의 수 많은 크고 작은 섬 들 중 굴업도라는 이름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겐 낯선 곳이었다.
하지만 모 기업이 이 아름다운 섬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하고 열 가구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섬에도 '찬성과 반대' 주민들로 나뉘면서 이슈가 되었다.
캠퍼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으로 캠핑 좀 한다 하면 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오토캠핑은 거의 불가능.
백패커들의 성지이다.
남편이 한번 혼자 다녀와서는 올 가을에 골프장 공사가 시작된다고 하니 그 전에 가보자 하여 가게 되었는데
지금 그 기업이 골프장 만들 처지가 안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기업으로 팔리거나 무산되지 않을까 싶다.
부디 이 아름다운 섬이 골프장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골프장은 단순히 '레저산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 반대 하느냐.
골프장의 잔디를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화학비료를 써야 하고 그 비료들은 폐수가 되어 땅 깊이 스며든다. 더군다나 이렇게 섬이라면 바다로 흘러 가기 쉽다.
아무리 좋은 폐수시설을 갖춰 놓는다 해도 말이다.
토요일 아침 연안부두에 있는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기 때문에 동네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야 했고
우리에게는 배 승선 시간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몇 바퀴 돌자 한 해수탕의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어 하루 주차를 하고자 했더니 1만 5천원을 부른다.
우리에겐 네고 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아 오케이를 하고 무거운 가방을 지고 터미널로 뛰어갔다.
내가 너무 힘들어 하자 남편이 내 가방까지 메고 뛰었다.
역에 도착하여 화장실도 가고 인터넷으로 예매했던 표도 찾고.
다행히 배가 10분 가량 연착된다는 방송이 흘러 나온다.
현재 연평도 포격 이후로 인천의 섬 여행이 줄어 인천시에서 반값을 지원하고 있다.
덕적도까지 4만원이 넘었으나 2만원만 내면 갈 수 있다.
도착하여 보니 사람들 모두 자신의 머리를 훌쩍 가릴 정도의 커다란 배낭들을 매고 있다.
다들 저 큰 가방에 뭘 넣은 걸까?
한 시간 만에 덕적도에 도착하여 보니 선착장에는 이렇게 해산물을 팔고 있다.
나의 사랑 이쁘니네 아주머니는 오늘 장사 좀 잘 하셨나요?
다시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향하는 배
모두들 똑같은 포즈로 갈매기들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사람들에게 갈매기가 구경꺼리인지 갈매기에게 사람들이 구경꺼리인지 알 수 없다.
굴업도로 들어가는 바다는 아름답기만 하다. 바다 색깔도 흔히 알던 서해 바다의 누런 색이 아니다.
점점 푸르러지고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곳 저 먼 곳에 희미하게 섬들이 안개에 가려져
신비한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아...정말 아름답고 고요하다.'
다시 한 시간 즈음 후에 드디어 굴업도에 도착하였다.
지금까지 다녔던 섬들과 다르다는 느낌은 바로 배가 선착장에 닿기 시작 할 때 부터이다.
능선과 산, 해변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그저 '아....너무 예쁘다' 라는 감탄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몇대의 트럭이 열심히 마을로 운반해 주신다. 민박을 하건 안하건 묻지 않는다.
그저 이 섬에 온 손님은 모두 이 마을의 손님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받지 않았던 쓰레기 봉투값을 1만원 내야 한다.
사람들이 와서 제 멋대로 버리고 떠난 자리를 마을 주민들이 모두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쓰레기 봉투는 백패커들, 비박 할 사람들에게 받는다.
한 명당 금액은 아니고 텐트당 금액 정도 되는 거 같다. 그건 당연한거고 제발 흔적 좀 남기고 오지 말기를 바란다.
(설마 쓰레기 값 냈으니 좀 버리고 와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몰상식적인 사람이 있진 않겠지)
남들은 모두 트럭을 타고 가는데 우리는 산길을 이용하여 걸어간다.
만약 이때 이후에 우리가 걸어야 할 거리가 엄청 남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기어코 트럭을 타고 가자고 했을 것이다.
뭐 덕분에 걸어가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천천히 즐기며 갈 수 있긴 했다.
이때는 아직까지 굴업도에 들어 온 것에 대해 작은 흥분과 설레임 때문인지 가방이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와 보니 이런 알림판이 제일 먼저 외지인들을 맞이 한다.
<이 섬의 개머리 능선, 연봉산, 덕물산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무단출입을 금한다>
하지마 이 섬의 대부분을 의미하는 저 곳들, 특히 캠핑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개머리 능산
캠핑 하지 않더라도 섬을 둘러보려는 사람들이 갈 수 밖에 없는 저곳들이 모두 사유지이므로 들어가면 안된다는 말은
"이 섬에 온 당신은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만 왔다갔다 하다가 조용히 떠나라" 라는 말이다.
과연 나는 착한 법치주의 국가의시민이 될 것인가 아니면 범법자가 될 것인가 잠시 생각하게 한다.
그러다가 기분이 나빠진다. 물론 이 나라는 자본주의 국가로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나라이지만
그 돈이 모든 것을 다 갖게 해서는 안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마을의 늠름한 (전) 이장님댁의 개 샘은
오늘도 외지인의 방문이 새삼스럽지 않은 가보다.
마을을 둘러보니 딱 열가구가 옹기종기 나름의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소박한 우편함이 마을 어귀에 놓여 있다.
육지에서 온 소식은 한건.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반가운 편지는 아닌 듯 하다.
이렇게 마을 게시판도 있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시판의 역할 보다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알림판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굴업도 공소도 있다. 공소라는 것은 사제가 주재하지 않는 작은 성당의 예배당을 말한다.
과연 몇번 언제 미사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방명록에 이름이라도 남길 걸 그랬나...
개머리 언덕은 사람이 이미 꽉 찼을 것이고 우리는 마을에 가까운 해변가에 텐트를 치려고 갔다.
마침 좋은 자리가 있어 막 텐트를 치려고 하는데
여러명이 우르르 오더니 우리 텐트 바로 앞에다가 (해변을 가리는 위치로) 너는 여기 너는 여기 하며 텐트 자리를 정하고 있다.
몇 텐트를 칠 예정이냐 물으니 대여섯 텐트를 치며 사람은 열명이 넘는다. 그리고 민박을 저 뒤에 잡았는데 이쪽 숲속 해변에 치라고 했다며
사람도 많고 술 마시고 늦게까지 떠들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말은 곧 '알아서 꺼지시오' 였다.
순간 열이 받은 남편을 잘 달래 그냥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자 하여 짐을 다시 쌓다.
그리고 몇 분 후에 난 속으로 그들을 마구 욕했다. 그 무거운 짐을 들고 마을을 다시 나와 선착장 있던 곳을 지나 해변가를 지나 산 속으로 올라가야 했고.
괜히 우리를 몰아낸 그들이 왜 이리 미운지. 내가 왜 남편을 말렸는지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그 이후로는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머리 속이 터엉.....
마치 고비 사막을 걷는 듯한 힘겨움.
나는 속으로 "나는 지금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고 있다" 최면을 걸고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힘을 주려는 듯 자꾸 여기 멋있지?, 저기 봐봐...라며 말을 걸었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인체 한발 한발 힘겹게 내걷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때 번성했던 이곳을 말해주듯 해변가에 늘어서 전봇대
제멋대로 자란 풀밭 사이에 숨어 있는 그릇들
마치 고대 그리스의 도시를 생각나게 하는 폐가들이 나름 바다를 배경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스의 한때 번성했으나 지금은 그저 한때 번성했던 곳을 찾아 오는 몇몇 관광객들만 있던 도시 '델피'가 생각났다.
사람들은 표정없이 간혹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호객하는 행위 조차 귀찮은 듯 바라보기만 했던 정적의 도시 '델피'
물론 이 굴업도의 '한때 번성했던' 때는 언제였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런 적이라도 있었을까?
이곳에 살던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 할까? 고향이라고 그리워 하고 있을까.
어깨는 찍어 누르듯 힘겹고 발은 천근만근하지만 이 풍경을 보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몇 시간을 걸은 듯한 시간이었는데 그 이후 숨이 턱 밑까지 차 오르고 도저히 한 발자국도 넘기지 못할 때쯤.
우리는 작은 묘지를 발견했고 남편은 이렇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 여기다 치려고 올라왔는데..."
-.-¿
아무리 힘이 든다 하더라도 묘지 옆에다가 텐트를 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다시 내려간다는 건 곧 나에게 죽음을 달라라는 선포와 같은 일이다.
이럴 때 우리에겐 딱 한가지의 선택만이 남아 있다.
'그래 조금 더 올라가보자'
마침내 좀더 올라가 보니 그럭저럭 자리가 하나 만들어진다.
이제 곧 등산객들의 발걸음도 드물어질 것이고 이곳이 나쁘진 않네 라며 (실은 더 이상 갈 힘이 없다)
집을 짓기 시작.
전망이 꽤 괜찮다. 아마도 사람 많은 곳 보다 훨씬 조용하고 좋을 것이다.
캠핑 가서 몸이 피곤하여 일찍 자기도 하고 원래 일찍 자기도 하지만 이날 만큼은 엄청난 피로감이 밀려와
저녁을 먹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는데 그것도 보지 못하고 노을도 못 보고....
나에게 배낭이 무리였을까..
더군다나 밤중에 깨는 일이 없는데 한번 깨서는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쑤시고 밖에서 부는 바람들이
마치 뱀이 스르륵 왔거나 아까 그 묘지의 영혼이 나타나 왜 남의 집 앞에 집을 짓냐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불면증이 그렇듯 한번 꼬리에 꼬리를 문 상상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무서웠다.
그래도 텐트 한 동 정도는 옆에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그러다가 스르르 zzz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의 눈도 퉁퉁 붓고 나의 얼굴과 눈도 퉁퉁 부었다.
서로 선글라스와 모자로 열심히 가려주고 물안개 자욱히 낀 섬을 돌기로 했다.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운데 작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까
더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여길 보다가 몇 발자국 걸으면 또 다른 풍경이.
능선을 걷다가 산을 만나다가 다시 해변을 만나고 오솔길을 만나고.
신비의 섬 그 자체다. 과연 누군가 돈 많은 그들은 이곳을 보고 반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최대의 수익모델인 '골프장'을 생각해 낸 것이다.
언덕 위의 우리집에서 내려다 보면 이렇게 좌우로 바다를 끼고 섬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얘기
산악회 리본이라는 것에 대해 할말이 많다. 목적은 산악회 홍보용과 등반로 안내라고 하는데 정말 등반로 안내의 역할이 꼭 필요한 곳에만 묶는지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산에다가 쓰레기를 만들고 온다는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산을 오르다가 낡은 색색가지의 산악회 리본을 보면 마치 성황당에나 온 듯한 기분이 들고
산을 보며 좋았던 마음이 어두워 진다.
그래서 나는 기력이 된다면 열심히 저 리본들을 뜯어서 쓰레기 봉투에 넣어가지고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악회 리본이라는게 과연 꼭 필요한지.
다시 한번 말하자면 과일 껍데기 조차 남기지 말고 들고 와야 한다.
나도 한때는 과일 껍데기는 썩을거니 괜찮대라며 버렸던 사과 껍질들
그것 조차 들고 내려와야 한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자연을 즐기고 자연에게 위로 받는다면 뭐 하나라도 흘리지 말고 와줬으면 한다.
이런 자연을 즐기다가도 점점 사람들이 자연을 훼손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굴업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사나무는 밑 뿌리가 뒤엉켜 자라듯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마을의 해변가를지나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이 철조망은 씨제이에서 세워 놓은 것이다.
옆에 사람들은 철조망을 밟고 위험하게 올라가야 한다.
언덕에서 바라보니 가까이 있는 섬들도 모두 해무에 가려져 구름속 같은 풍경이다.
개머리언덕쪽으로 가는 사람들. 나는 체력 바닥으로 여기에서 포기 하였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전 이장님댁에서 점심을 예약 하였다.
해물찌게에 푸짐한 반찬들. 정말 게눈 감추듯 모든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게 먹었다.
과연 소문대로 제대로 된 가정식이다.
이제 이 굴업도를 떠나야 할 시간
이번에도 걸어서 선착장 가자는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트럭을 기달다가 타고 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갈 배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섬을 떠나기가 아쉬운듯 기념 촬영을 하느라 바쁘고 나는 바위 언덕 위에서 그들을 구경한다.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꼭 그렇게 되길 바라며)
가을 억새풀이 자랄 때 즈음 다시 돌아오겠다.
떠나면서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여보, 여기 정말 그리스보다 아름다워, 내가 지금까지 다녀본 섬 들 중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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