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사람을 대출해드립니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처음부터 너무 흥미 있는 얘기였다. 30분간 내가 원하는 사람을 대출목록에서 골라서 일대일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내게도 주어졌다. 예스24 이벤트로 여러 분야의 분들이 대출목록으로 올라왔고 나는 그 중 하림이란 도서를 대출하기로 했다. 그에 대해 내가 아는건 ‘출국’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불후의 명곡들! 사실 그의 1,2집에는 좋은 노래들로 가득 차있다. 쉽게 쉽게 앨범을 내지 않는 그가 본인의 마음에 들 때까지 오래 묵혀서 내는 앨범들이기 때문 일거다.
하지만 나는 가수 하림이 아닌 여행가 하림을 읽고 싶었다.
약속장소로 나가며 ‘이건 인터뷰가 아니야. Live book을 대출하는 거라고’ 라는 마음 가짐 하나 준비해갔다. 그리고 물을 자주 안줘도 살 수 있는 작은 화분과 함께.
상수동으로 최근 이전한 ‘이리까페’는 지상으로 올라와 좀더 넓고 밝은 분위기의 카페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예술인들이 모이는 살롱(salon)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며 하림씨 보고 싶으면 이리로 오라고 했다.
그가 조금 늦어 주시는(?) 바람에 나와 또 한 명의 대출자 분과, 출판사에서 나오신 두분 이렇게 넷이서 서로 좁은 세상을 얘기하며 반은 일 얘기인 듯한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익한 시간이었다. 역시 세상은 좁아~
마침 그가 도착했고 자리를 옮겨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가 먼저 자리를 잡으며 “저를 정말 선택하신거에요? 아..저 만나기 되게 쉬운데..” 라며 쑥스럽게 인사를 건냈다. 사실 두근거려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편하다. 자~ 그럼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나는 먼저 그에게 내가 듣고 싶은 하림중 ‘여행’ chapter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했고 그는 이 리빙 라이브러리의 컨셉을 잘 이해한 듯 내가 따로 질문하지 않아도 그의 여행 얘기를 술술 잘도 풀어나갔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음악, 여행, 그리고 아일랜드를 얼마 전 방송 촬영 차 다녀와서 흥미가 더 생긴 ‘그림’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여행을 통해 다 만들어가고 있었다. 유럽,아프리카를 돌며 각국의 음악과 악기를 배우고 거리에서 연주를 하며 때때로 까페에서 그림과 글을 쓰기도 한다. 그가 잠시 보여준 여행 다이어리를 읽다 보니 간간히 나오는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그의 여행얘기들은 딱 나의 여행에 대한 생각들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다시 전해 듣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처음에 여행을 떠날 때와 점점 달라지는 여행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돌아와서 달라진 생각들.
나는 예전에 여행을 가기 위해선 캐리어에 이것도 담고 저것도 담고 카메라도 종류별로 담고 또 돌아올 때 쇼핑해 올 물건들의 여유분까지 고려해야 하는 짐싸기를 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작은 백팩에 일주일치의 옷과 물건들 그리고 똑딱이 하나 챙겨서 떠나게 됐다. 하이디 처럼 추우면 옷을 하나하나 겹쳐 입었고 더우면 하나씩 벗어 가방에 넣으면 되었다. 어쩌면 살면서 그리 많은 옷은 필요하지 않다라는 생각. 좀 버리면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 너무 많은 것들을 쌓아 놓고 산다는 생각. 그리고 돌아 돌아오니 내 나라 ‘한국’이 소중하다는 생각.
그가 자신을 민족주의라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민족주의자이지만 여행을 다니기 전과 생각이 바뀌었단다. 좀더 넓게 보게 된 것이다. 좀더 환경과 세계 문제들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되어 ‘우리민족만 최고’라는 생각에서 좀더 시야가 넓어졌다는 의미… 무엇보다 공감 간다.
그리고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또 느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여행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진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여행 가고 싶어서 어떻게 살아? 또 언제 안가?” 라고 했을 때. 그 간절함이 사라지는 이유는 질려서라기 보다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어>라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내일 당장 떠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여유를 안고 있다라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거 같다. 돈이 없어서, 휴가가 없어서 못 떠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지만 그 여행이 그리 커다란 목표는 아니다. 그저 생활의 한 조각일 뿐. 좀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의 가방은 지금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이며 그의 마음도 언제든 그걸 받아 들일 수 있다.
여행에 대한 생각을 공감할 수 있었던 그 자리, 나는 중간중간 “아 저도 그래요” 라며 내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그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30분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나머지 그의 여행 얘기는 언제가 세상에 나올 그의 책에서 기대해본다.
그리고 아마 가장 먼저 그의 책을 사는 독자 중 한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저 | 달 |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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