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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ap Diary

이해인 수녀님 만나고 오는 길


일 때문에 이해인 수녀님을 만나러 부산 수녀원에 가는 날.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그 먼 길을 따라 가겠다고 했다.
그 동안 몇 번 같이 동행하고 싶었던 인터뷰가 있었지만 늘 시간이 맞지 않아 못 갔는데.
이번에는 마음 먹고 가기로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물었다. 윗사람은 거길 왜 가냐고 대 놓고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뵙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아서 가기로 했다.



실은 나의 친할머니, 마리아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물론 연세가 나의 할머니 때 이기 보다는 부모님 연세에 더 맞긴 하지만.
나의 할머니가 그 연세에 얼마나 열심히 성당을 다니셨는지, 늘 할머니의 사회생활은 성당과 보육원 봉사 활동이 전부였기에.
왠지 수녀님을 만나면 그때의 나의 마리아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녀 같은 수녀님은 큰 병을 앓으셨던 것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시고
여전히 문학적이시고 그 분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 바쁘셨다.

서울에서 멀리 오는 손님들을 위해 책과 컵케잌과 작은 동백꽃.
그리고 인터뷰 도중에도 왔다갔다 하시며 끊임없이 선물이 나오는 요술의방.
결국 떠날때에는 가방이 터질 것 같이 선물들이 가득 찼다.
비누, 만든 하트 수세미, 초콜렛, 수필책…



나에게 “팀장님은 사과좀 깎아 드세요. 아주 맛있어요”하여 급 당황하였다.
원래도 사과를 깎지 못하여 늘 남편이 사과를 깎아 놓고 나가면 손님 맞을 때 내놓곤 했는데.


사과를 깎을 때 미리 조각을 낸 후에 깎으라는 엄마의 가르침도 잊어버린 체
몽땅 깎아 놓고 조각을 내려니 영 모양이 안 선다.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더니 사과의 모습에서도 당황스러움이 느껴진다고.

나는 사과를 가지고 가서 인터뷰를 들으며 방청객 역할을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필요로 하는지.
수녀님 조차 아팠을 때 쓴 글들은 읽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하지만 자신의 아픔 때문에 울지는 않았다고.

수녀님은 친히 추운 날씨에 우리를 배웅하러 나오셔서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조심히 올라가라고 인사를 하고
그 다음 약속을 위해 오신 분들에게 가셨다.

먼길 다녀왔지만 힘들지 않았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나고 온 기분.

수녀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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